DD: Development Diary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박상영, 인플루엔셜 본문
어디에 가면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을 즐길 수 있을까? '바쁘게 살아가는 것'으로 나의 인생을 어느정도 증명해왔던 나는, 교환학생을 위해 해외로 떠나 그곳의 여유를 배워온 친구를 동경했다. '나도 해외에 가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돌아오겠어!' 라는 다짐을 한지 6개월조차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온라인 수업을 포함한 모든 수업을 최대한 열심히 듣고, 뭐 하나 배워가려고, 졸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매일 새로운 단어를 하나쯤은 외우려고 발버둥 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사람 쉽게 바뀌지는 않는구나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그러한 방법으로 나를 증명하려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그냥 견디지 못한다. 어떻게든 할 일을 찾아내서 하고 있는 내 모습은 매일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은 나보다 더 심한 작가의(나는 서울-제주 비행기를 한 달에 10번씩이나 탈 자신이 없다. 그는 해냈으므로 나보다 더 심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진심으로 일을 사랑하는 것으로 보인다!) 에세이이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기도 하고, 여행을 기다리며 계획을 세우는 것도 좋아한다. 여행을 다녀오면 그 기억으로 다음 여행 때까지 행복하게 지내는 편이다. 하지만 작가는 여행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싫어한다.
어쩌면, 내게 있어 여행은 '휴식'의 동의어나 유의어가 아니라, 일상의 시름을 잊게 해주는 또 다른 자극이나 더 큰 고통에 가까운 행위가 아닐까?
하지만 여행을 싫어하는 작가가 적은 이 책은 나에게 '휴식'의 탈을 쓴 '여행' 에세이였다. 심지어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들어주는 여행 에세이. 비행기로 여행을 떠나고 돌아오며 읽었는데, 얘기들이 하나같이 웃기고 재미있어서 비행기에서나 버스에서 깔깔 웃었다. 요즘 웃긴 얘기들 하나하나가 내게 소중하고 개그만화가 제일 재미있다. 물론 진지한 태도도 중요하지만, 사실 진지한 일은 어딜 가도 벌어지고 있지만 재밌고 반짝이는 순간의 추억들은 찾아내야만 웃을 수 있으니까 더 소중하고 중요하게 느껴진다. '요즘 나 왜 이렇게 안 웃길까.' 하는 고민을 하는 작가의 에세이를 이런 시기에 읽게 되어 참 기뻤다.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기록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고, 작가와 주변인의 모습에서 나를 돌아볼 수도 있었다. 첫번째 키워드는 '감정의 경제성'. 나는 모든 종류의 자극에 쉽게 자극되는 사람이다. 작가의 표현대로 쓰자면 '족히 몇 달을 잡고 늘어질 만한 사건'이 많은 '감정의 괴물'쪽에 가깝다. 3부 <감정의 경제성>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었고, 이건 다른 키워드들을 더 생각해보게 만들어주는 중심 키워드로 자리잡았다.
두번째 키워드는 '추억의 소중함'이다. 나는 작은 것들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섬세하고 세심한 사람을 정말 부러워하고 존경한다. 작가 역시 잊고 있던 추억들을 주변으로부터 상기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그 마음을 감사하게 받는 모습에서 조금 더 반성하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작은 추억을 기억해준 사람들에게 고마워한 적이 있었나? 하고.
때때로 마른 입술에 촉촉함을 더해주던 사람, 추억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사람. 그래도 잊고 있던 사소한 추억까지 간직해 반짝이는 모습 그대로 상대에게 전해주는 사람.
이런 사람이 되고싶다고 생각했다. 또한 위처럼 그 사람의 섬세함을 알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위 내용이 담긴 1부 <빛이 고이는 곳>과 <에필로그>를 읽으며 '추억의 소중함'과 이를 소중히 다룰 줄 아는 마음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내가 지나쳐온 소중한 추억들을 조금씩이라도 떠올려보면서.
마지막 키워드는 '순간의 반짝임'이다. 이 책에 담긴 순간들은 분명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을 담고 있다. 하지만 찰나의 반짝임들이 모여 돌아보면 반짝이는 실처럼 보인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의 반짝임이 곧 인생이라고 믿기로 했다.
꼭 모든 순간이 반짝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잊고 지낼 때가 많다. 꼭 모든 순간이 재미있고 행복해야 할까? 아닌 걸 알고 있으면서도 이상한 욕심을 낸다. 순간의 반짝이는 구슬들을 모아 나라는 실에 꿰고, 반짝이는 실을 만들고 싶다. 양손 가득이 아니어도 손에 소중히 쥐고 언제나 누구에게나 내 구슬을 열어 보여주며 힘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